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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석사이야기 2015. 2. 24. 10:55

    “무량수전은 아미타불 설법처 ‘칠보강당’”

    [김태형의 부석사 이야기]15-무량수전의 수수께끼를 풀다
    “서쪽에 본존 모신 특이한 법당구조, 명문와편․계단이 증명”

    2015-01-27 (화) 10:46

    김태형 | jprj44@hanmail.net


    부석사의 대표적인 건물이며 한국고대건축사에서 가장 중요한 유물 중 하나인 국보 제18호 ‘무량수전’. 배흘림기둥과 주심포양식이라는 독특한 건물 구성도 구성이지만,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하고 어려운 숙제로 여기는 것은 무량수전의 내부구조다.

     

    통상 대웅전에 해당하는 금당은 남향으로 어칸의 문을 중심으로 정면에 일(一)자형으로 수미단과 함께 본존이 봉안되는 경우가 거의 전부이지만 부석사의 무량수전만은 법당 정면이 아닌 좌측, 즉 서쪽에 본존이 모셔져 있다.

     

    이를 두고 흔히 아미타불이 서방정토의 극락교주이기 때문에 서쪽에 자리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다른 사찰의 아미타불을 봉안한 극락전, 미타전, 무량수전 등의 경우 부석사의 예와 다르게 나타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동안 많은 연구자들이 무량수전과 부석사 혹은 무량수전과 관련된 연구 성과를 발표했지만 지금까지 명쾌한 답을 내놓은 경우가 매우 드물다. 아니 없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렇다면 부석사 무량수전은 왜 다른 사찰에서는 보이지 않는 특이한 법당구조를 가진 것일까.

     

    결론부터 말한다면 그것은 일반적인 금당(金堂)이 아닌 강당(講堂)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삼국유사》의 ‘남백월이성 노힐부득 달달박박’조에  ‘광덕(廣德) 2년(764) 7월 15일에 백월산 남사(南寺)가 완공되자 소조미륵존상을 만들어 금당(金堂)에 모시고 액자를 ‘현신성불미륵지전(現身成道彌勒之殿)’이라 했고, 소조아미타불상을 만들어 강당(講堂)에 모셨는데 그 액자에 ‘현신성불무량수전(現身成道無量壽殿)’이라 했다. 《삼국유사》의 기록을 근거로 본다면 무량수전이 강당이었음을 증명하는 하나의 증거가 된다.

     

    여기에 경전의 예를 살펴보면『불설무량수경』에 “무량수불께서 여러 성문과 보살들을 위하여 법문을 설하실 때에는 모두 다 칠보로 된 강당에 모이게 하여 성불하는 가르침을 자세히 말씀하시며 미묘한 진리를 밝히시느니라. 법문을 들은 대중들은 환희에 넘치며 마음이 열리고 진리를 깨닫지 않는 이가 없느니라. 이때 사방에서 자연히 미풍이 불어와서 보배나무가 살랑거리면 다섯 가지의 미묘한 음악이 울려 퍼지고….”

     

    무량수불, 즉 아미타불이 여러 성문과 보살들을 위하여 법문을 설하는 장소가 칠보로 장엄된 ‘강당’이다. 특히 무량수전 본존좌대 주변의 녹유전과 관련하여 유리로 바닥이 된 극락세계를 표현한 것이라고 하는데 그 보다는 무량수불이 설법하는 칠보로 장엄된 강당을 표현하려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여기에 필자는 무량수전 북쪽 경시지에서 ‘강당(講堂)’이라는 명문와편을 수습한 바 있다. 이 명문와편은 무량수전이 강당임을 증명하는 결정적인 증거가 된다.

     

    15-1.jpg

    무량수전 뒤 경사지에서 발견된 ‘강당’명 명문와편 탑본. 이 명문와편은 무량수전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서 몇 점이 더 발견되었다.

     

    무량수전이 강당임을 결정짓는 시설이 현장에 있다. 그것은 바로 무량수전 기단에 설치된 계단이다. 부석사가 아닌 다른 사찰(근래에 복원 혹은 신축된 사찰의 경우 제외)을 보면 금당에 해당하는 법당의 출입 계단과 부석사 무량수전의 기단에 설치된 계단에 큰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대부분의 사찰 금당인 대웅전의 진입 계단은 1개이거나 정면에 없고 좌우로 설치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8세기 중반에 건립된 경주 불국사의 금당인 대웅전을 보면 정면에 계단1개소가 있고 동쪽과 서쪽에 회랑과 연결된 계단이 있다. 또한 통도사 대웅전은 한 개의 계단에 중앙에 답도를 두어 2칸으로 분리하였으며, 해인사 대적광전은 정면의 중앙계단과 함께 좌우로 별도의 계단을 두었다.

     

    이외에도 여러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금당과 직접 연결된 진입계단이 부석사와 같은 예가 없지만 강당에 해당됐던 경주 불국사 무설전(無說殿)은 4개의 계단이 설치되어 있고, 익산 미륵사지 강당지에서는 부석사와 마찬가지로 3개의 계단시설이 확인된다.

     

    특히 무량수전의 아미타불이 서쪽에서 동쪽을 바라보고 있는 방식은 서방정토의 교주라는 상징적 의미 외에도 강당의 성격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서였다고 볼 수 있다. 이는 현재에도 통용되는 사례로 무대의 경우와는 달리 교실 혹은 강의를 하는 공간의 경우 정면에서 진입하는 구조가 아니라 측면에서 진입한다는 사실로도 충분히 입증된다.

     

    15-2.jpg 15-3.jpg

    무량수전으로 진입하는 계단이 3곳인 점도 무량수전이 강당임을 입증하는 증거다. 일반적으로 금당에는 정면에 계단이 하나이거나 좌우에 각각 하나씩 있는 경우가 대다수로 경주 불국사의 강당인 무설전은 특이하게 계단이 4개이다. 이는 무설전이 정면 8칸의 구조여서 홀수인 3개의 계단을 설치할 경우 전체적인 균형이 깨지기 때문에 4개의 계단을 설치한 것이다. 그러나 부석사 무량수전은 정면 5칸의 구조라 2,3,4칸에 계단을 설치하여 균형을 맞춘 것이다

     

    부석사 무량수전이 강당이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즉 의상 스님이 화엄을 대중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설명했는가하는 문제의 열쇠가 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부석사 경내 원융국사비문에 따르면 ‘일승(一乘) 아미타불은 열반에 들지 아니하고 시방정토(十方淨土)로써 체(體)를 삼아 생멸상(生滅相)이 없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화엄경》「입법계품」에 이르기를, 아미타부처님과 관세음보살로부터 관정(灌頂)과 수기(授記)를 받은 이가 법계(法界)에 충만하여 그들이 모두 보처(補處)와 보궐(補闕)이 되기 때문이다’라고 하는 대목을 주목해야 한다.

     

    『불설무량수경』에서 아미타불이 청문대중으로 삼은 대상은 바로 성문과 보살로 법계에는 이미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로부터 관성수기를 받은 이가 충만해 있다고 하여 무량수전에 들어와 참배를 하는 모든 이들이 바로 성문과 보살이 되는 것이다. 즉 무량수전에 들어오는 순간 중생은 더 이상 중생이 아니라 성문과 보살의 지위를 얻은 깨달은 존재다.

     

    이는 기세간과 부처는 중생과 떨어진 것이 아니며 중생에게 부처와 기세간이 갖추어져 있다는 《일승법계도》의 화엄정신을 의상 스님은 무량수전을 통해 구현한 것이다.

     

    이로써 무량수전의 내부구조에 대한 의문은 모두 해결된다. 다시 말해 무량수전은 아미타불이 칠보강당에서 성문과 보살들에게 설법하는 ‘칠보강당’인 것이다.


    이제부터 부석사를 참배하시는 불자는 물론 모든 대중들은 무량수전에 들어와 아미타불을 친견하는 그 순간 중생이 아니라 성문이며 보살로 그 공간에서 아미타불의 설법을 듣기 바란다.

     

    15-4.jpg

    저녁예불 중인 무량수전. 아미타불의 무언설법(無言說法)에 스님은 독경으로 답을 하고 있다. 부석사 무량수전은 극락세계의 칠보강당으로 이제 누구나 무량수전에서 참배하는 순간 중생은 사라지고 성문과 보살이 그 자리에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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