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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석사이야기 18.
    부석사이야기 2015. 2. 24. 10:51

    취원루, 누각•영정 봉안 복합건물 추정

    [김태형의 부석사 이야기]18-사라진 건물 옮겨진 건물, 그리고 그 흔적①
    사명대사가 수행했던 취현암은 현재 안양루 아래 서쪽으로 이전

    2015-02-22 (일) 13:26

    김태형 | jprj44@hanmail.net


    작년 가을부터 시작한 ‘부석사 이야기’ 어느덧 두 계절을 지나 새로운 계절로 접어든다. 세상을 살면서 어느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부평초처럼 떠다니는 게 인생이라 하지만 부석사에도 그런 인생을 경험한 건물과 유물이 있다.

     

    부석사와 관련된 몇 권의 책과 연구논문들을 보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특정 건물에 대해 잘못알고 있거나 혼선을 빚는 경우를 여러 차례 보았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취현암(醉玄菴)과 취원루(聚遠樓)다. 이 두 건물 중 취원루는 본래 무량수전 서쪽에 있었던 누각이다. 앞서의 글에서도 몇 번 언급을 했지만 구체적인 소개가 없다 보니 과거 취원루의 위상이 어떠했는지 독자들도 짐작이 가지 않을 것이다.

     


     

    DSC_7448.jpg

    무량수전 서쪽에 있었던 취원루의 흔적으로 당시 사용되었던 주춧돌이 남아 있다. !표시가 되어 있는 곳이 현재 남아 있는 취원루의 주춧돌로 추정된다.

     

    우선 취원루와 관련된 옛 기록을 살펴보면『재향지(梓鄕誌)』에는 ‘금당(金堂) 서쪽에 취원루가 있는데 돌계단을 깎아질러 높이가 10여 길이나 된다. 남쪽을 바라보면 온 산이 모두 눈앞에 펼쳐지는데, 시력이 좋으면 3백 리는 바라볼 수 있다’고 하면서 우리나라 서원의 시초인 소수서원을 건립했던 주세붕 선생(1495~1554)의 시를 소개하였다.

     

    천 년의 부석사                                   浮石千年寺
    멀리 학가산과 평평하네.                      平臨鶴駕山
    다락은 구름 위에 있고                         樓居雲雨上
    종소리는 북두성 사이에서 들리네.         鍾動斗牛間
    나무 깎아 멀리 하수 나누어 끌어오고     刳木分河逈
    바위 갈라 널찍이 옥을 심었네.              開岩種玉閑
    절에서 자는 것을 탐하는 것이 아닌데도  非關貪貧佛宿
    시원하여 돌아가는 것을 잊네.               瀟洒却忘還

     

    또,

     

    만고의 사찰 부석사에서                             萬古珠琳浮石寺
    백발의 몸 석양 속 누각에 기대었네.             白頭來倚夕陽樓
    저문 하늘 밖으로 구름 점점이 흘러가           浮雲點點暮天外
    고금을 헤아려 보며 시름에 젖네.                 商略古今多少愁

     

    퇴계 이황선생도 취원루에 올라 시를 남겼는데,

     

    붉은 난간 주위로 층층 쌓은 섬돌                  矗成雲砌繚紅欄
    신이 이룬 역사 감탄하며 구경하네.               奔走神功偉覽看
    천상 세계 놀랄까 큰 소리 내지 못하고           不敢高聲驚上界
    뭇 산들이 남산에 자랑한 것을 이제 알았네.    方知衆皺詑南山
    신선은 연하 밖에서 살고                              好居仙客超霞外
    흥겨운 나그네 세상 밖으로 나왔네.                乘興遊人出世間
    고금이 일맥(一貉)인 것이 감회로우니             感慨古今歸一貉
    술잔 앞에서 관직 생활 어려움 말하지 말게나.  樽前休說宦途難


    하였고, 또

     

    귀신과 하늘이 만든 만고의 누각.     鬼役天成萬古樓
    풍운에 맡겨 두고 새 가을 맞네.       風雲一任洗新秋
    깊은 밤 홀로 고승과 마주한 자리     夜深獨對高僧榻
    오직 먼 허공에 초승달만 바라보네.  惟見長空月似鉤

     

    이 두 분의 시(詩) 외에도 많은 선비와 묵객들이 취원루에 올라 시를 짓고 경치를 감상하였다. 그렇다면 취원루는 어떤 건물이었을까. 일단 누각이니 현재 남아 있는 안양루나 범종루와 같은 구조는 아니었을까.

      

    1780년 부석사를 찾은 박종이 남긴 『청량산 유록』을 보면 ‘그 앞(무량수전)에는 취원루(聚遠樓)가 있다. 이것은 높은 층 가운데서도 가장 높은 누각이다. 눈앞이 탁 트여 아득하여 그 끝이 없다. 대개 풍기, 순흥, 영주, 안동, 예천, 용궁 등 8, 9개 고을의 산하가 손바닥의 모양처럼 보인다’고 하였다.

     

    1615년 김령(金坽: 1577~1641)이 남긴 『계암일록(溪巖日錄)』에는 ‘동쪽 낭옥과 서쪽 낭옥이 무량수전의 양쪽에 있다. 취원루는 서쪽 낭옥에 연결되었는데, 높고 시원하게 시야가 터져서 한 눈에 백리가 들어온다. 뭇 산들이 첩첩히 모두 흩어져 있는데, 아득히 보이는 중에 오직 학가산(鶴駕山)이 동남쪽에서 크게 솟아 있고, 소백산은 연달아 서북쪽으로 걸쳐 있다’고 하여 취원루에서 보는 경치가 천하제일이라 칭할 정도였음을 알 수 있다.


     

    취원루의 구조를 엿볼 수 있는 기록을 살펴보면 1709년 부석사를 방문한 신정하(申靖夏: 1681~1716)는 『태백기유(太白紀遊)』에서 ‘누각은 아주 높지는 않으나 산천 연운이 모두 안석 사이에 있으니 대개 이 절의 최고 승경처이다. 누각의 뒤에는 판각(板閣)이 있는데, 고승(高僧) 18분의 영정(神幀)을 봉안하였다. 큰 눈썹이 아래로 드리우고 눈빛이 형연하게 사람을 비추니 엄숙하여 공경할 만하다’고 하여 단순히 누각의 기능만이 있었던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중환(李重煥: 1690~1756) 『택리지)』에는 ‘절 뒤에 있는 취원루는 크고도 넓다. 마치 천지의 한 가운데 솟은 것처럼 아득하다. 기세와 정신이 웅장해서 마치 온 경상도를 위압할 듯하다……취원루 위 한쪽 구석에 방을 만들었는데, 그 방에 신라 이래 이 절에 머물렀던 중 가운데 사리가 나온 이름난 중의 화상 10여 폭이 걸려 있다. 모두 얼굴 모습이  예스럽고도 괴이하며 풍채가 맑고도 깨끗해, 엄연히 다락위에서 서로 대좌해 선정에 든 듯하다’고 하여 취원루가 누각인 동시에 역대 고승들의 영탱을 모신 영전(影殿)과 또 다른 용도로 사용된 복합건물임을 알 수 있다.

     

     


    DSC_9592.jpg

    취원루의 구조를 엿볼 수 있는 영주시내 서천가에 있는 제민루.

     

    이상의 기록을 종합해 보면 취원루는 2층 구조의 누각 형태를 띤 장방형 건물로 남쪽은 누각 북쪽은 판각(板閣)과 영전(影殿) 등으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형태로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이 영주시내 서천(西川)가에 있는 제민루((濟民樓)이다. 제민루는 1433년 군수 반저에 의해 창건되었다가 1598년에는 약재를 보관하던 약재소로 사용되던 건물이었다.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제민루는 정면 4칸, 측면 1칸의 건물로 1층과 2층에 각 1칸씩 방으로 꾸며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앞서의 기록에서 판각과 고승들의 영탱을 봉안했다고 한 점으로 미뤄 볼 때 최소한 1층과 2층 건물의 2칸 정도가 방으로 꾸며져, 1층은 판각, 2층은 영전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 남아 있는 취원루의 주춧돌의 흔적으로 보아 이 누각은 측면 2칸 정면 4칸 규모의 남북선상의 장방형 구조로 추정된다.

     


     

    DSC_7412.jpg

    사명대사가 수행했던 곳으로 알려진 취현암. 본래 조사당 옆에 있었지만 현재는 안양루 아래 서쪽으로 1916년 이전되었다.

     

     

     

    전하는 얘기로는 사명대사가 부석사에 머물면서 주석했던 건물이 취현암이라고 한다. 이 취현암은 본래 조사상과 연이어 있던 건물이었지만 1916년 조사당 중수를 하면서 화재 등의 이유를 들어 안양루 아래 서쪽에 이건하였다.

     

    이 당시 취현암의 건물 부재에서 홍치(弘治) 6년(1493), 만력(萬曆) 41년(1613), 순치(順治)  6년(1649) 등의 연도가 적힌 묵서가 있었다고 한다. 1978년 경내 정화공사 당시 약간의 변형이 있었지만 상당부분의 부재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DSC_7413.jpg

    취현암에 남아 있는 단청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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