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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적힌 사연들부석사이야기 2014. 6. 7. 11:19
<부석사 무량수전>
부석사, 경북 영주시 부석면에 위치한 한국화엄학의 종찰이며 의상대사가 창건한 1300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국내 굴지의 사찰이다.
사람들이 부석사하면 가장 많이 떠올리는 것이 바로 무량수전이다.
부석사박물관 학예사로 있다보니 종종 무량수전 주변을 배회하면서 계절에 따른 사진도 찍고 문화재의 특이 현상 등에 대해서도 기록을 남긴다.
불자들의 경우라면 대부분 법당 안에 들어와 부처님 전에 불전을 놓고 참배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겨우 법당문 사이로 보이는 부처님을 먼 발치에서 보거나 그저 법당 주변을 서성이다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무량수전을 배겨으로 기념사진 찍는 것은 기본이고 때로는 배흘림 기둥에 등을 기대고 멀리 소백산 연봉들을 바라보기도 한다.
주심포니, 배흘림이니, 공포가 어쩌구 저쩌구 떠들어 봐야 좀 지식이 있거나 관련 연구자 혹은 관심있는 이들의 지식의 호사 일뿐 일반인들에게는 그저 오래된 건물, 멋있는 목조건축 정도로 생각한다.
간혹 가족들을 데리고 와서 아버지가 그렇듯하게 자식들에게 무량수전을 설명하는 것을 우연히 듣다보면 내가 낯이 뜨거워 얼굴이 붉어질 정도다.
차라리 안내판에 가서 해설문을 그냥 함께보면 좋았으련만.
그러나 무량수전은 그 밖과는 달리 내부에 많은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다.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는 아미타불과 다른 사찰의 법당과는 달리 불단이 정면입구에서 남향을 하고 있지 않고 왼편에 불단이 설치되고 불상은 동쪽을 바라보는 형상이다.
미술사적이나 건축학적인 어떤 얘기보다는 오늘은 백여년전 혹은 그보다 더 조금 오래된 무량수전을 참배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겨울에는 추위 때문에 법당문을 거의 닫아두지만 여름이면 모두 개방을 한다.
나야 부석사박물관 학예사이니 수시로 사진촬영이나 조사를 할 수 있지만 일반인들의 경우에는 거의 어렵고 사실 실내촬영이 금지되어 있는 것은 세계 어느 나라의 실내문화재에 거의 다 적용이 된다.
그럼 지금부터 100여년전 부석사 무량수전을 찾았던 이들의 흔적을 찾아 본다.
무량수전은 우선 외부에 16개의 배흘림 기둥이 있고 내부에는 그 절반인 8개의 배흘림 기둥이 있다.
외부로 노출된 기둥에는 현재 단청도 되어 있지않은 원목의 상태이지만 내부는 아직도 조선시대의 단청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특히 기둥에는 붉은색 주칠이 외어 있는데 이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면 먹으로 쓴 글들을 확인할 수 있다.
정말 많은 글들이 적여 있지만 그나마 판독이 가능한 일부만 소개한다.
<외부에서 본 무량수전의 배흘림 기둥)
1.奉化 乃城面 虎坪居 ●●● 戊申년 四月 過此
(1908년 혹은 1848년 4월에 봉화 내성면에 사는 누군가가 다녀갔다)
2.慶尙道 榮川 韶川居 佛前望●●
(경상도 영천(영주) 소천에 거주하는 누군가가 부처님전에 뭔가를 기원한 내용)
3.安東 前川居 金在喆 己亥 三月十五日 太白山 浮石寺 過次
(안동 전천에사는 김재철이라는 사람이 1899년 3월15일 부석사를 방문했다는 기록)
<사진 의 묵서 내용이 4번의 글이다. 무량수전 안 기둥에 적혀있는 득남을 바라는 소원을 적은 부부의 애틋한 사연>
4.慶尙北道 安東郡 豊地(山)面居 金龍信 所願 乾命 己●生(기축생일 경우 1889년, 기묘생일 경우 1879년), 坤命 丁亥生(1887년생) 生男 就願文
(경북 안동 에 거주하는 김용신(1889년생 혹은 1879년생)이 1887년생 아내외 함께 무량수전에 와서 아들 낳기를 기원하고 축원한 내용으로 이들의 나이를 대략적으로 환산하여 이 기록을 남긴 시기를 역산하면 1900년대 초일 것으로 보인다. 경상북도라는 지명을 사용한 것으로 보아도 대략 그 시기 쯤으로 보인다)
5.榮川居 李鐘岐 李鐘夏 庚寅年 三月 二十日 過次
(영주에 거주하는 이종기, 이종하 이 둘은 형제로 보이는데 1890년 3월20일에 부석사에 다녀갔음을 기록하고 있다)
6.●●道 ●●郡 丹山面 南木里居 金錫宰 一生所願 父母壽命康寧●●●富貴多男●●●●千万●●
(부분적으로 글씨 판독이 어렵지만 전반적으로 유추해보면 경상도 순흥군 단산면남목리에 사는 김석재라는 사람이 일생의 소원으로 부모의 수명장수와 부귀, 자손번창을 기원하고 있는 내용이다)
7.慶尙北道 ●●里居 ●●生 再拜 無量壽佛前 多男子●文章●祝伏
(경상북도라는 지명을 사용한 것으로 보아 1900년대 초에 무량수전을 참배하면서 무량수부처님께 절을 하고 득남을 축원한 내용이다)
8.安東 甘泉面 ●洞里 丙戌 九月二十三日 姜永淳 金益洙 崔道述 過次
감천면은 지금은 예천군 소속이었으니 이 글을 기록할 당시에는 안동에 속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감천면이 예천으로 속한 연대가 1914년 이었으므로 이 병술년은 1886년 경으로 추정된다. 강영순, 김익수, 최도술 아마도 이들은 친구들로 함께 부석사에 유람을 왔다가 글을 남긴 것으로 보인다.)
9.順興 三人 五月十二日 具炳魯 具萬秀 姜在喆 今日同遊記
순흥에 사는 구병로, 구만수, 강재철이라는 사람이 때는 알 수 없지만 5월 12일 부석사에 유람을 왔던 것을 글로 남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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