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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수전 편액(扁額)부석사이야기 2014. 3. 14. 20:41
부석사 무량수전 편액(扁額)은 고려 제31대 왕(1351~74 재위)인 공민왕의 친필을 판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민왕이 무량수전 편액 친필을 남긴 시기는 1361년(공민왕 10)에 홍건적의 침입을 피해 왕이 경북 안동으로 피난해온 시기에 남긴 것으로 보인다.
현재 현판 뒤에는 묵서명이 남아 있는데 그 내용은 “옛날 신라 의봉 원년에 부석사를 창건하였는데 금당의 액자 글씨는 공민왕이 쓴 것이다. 경오년(1690)에 왕족인 낭선군이 부석사에 와서 그 액자를 건 뜻을 쓰고 신미년(1691) 여름에 이 절 화승 영필이 마음먹고 액자 테두리를 다시 만들었다(粵在新羅儀鳳元年創建浮石寺, 金堂題字, 恭愍王之親筆也, 當此庚午之時, 國族朗宣君到于浮石寺, 題于符板之意, 命其書鎭云, 到于辛未孟夏間, 寺畵僧瑛珌慨然傾心四雪角改造也)”라고 적혀 있다.
낭선군(朗善君) 이우(李俁, 1637∼1693)는 대동금석서 (大東金石書)의 편찬자로 선조의 손자이다. 또한 무량수전 서쪽 부석에는 ‘선원록 봉안사 낭원군’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는데 낭원군(이간李偘(朗原君, ? - 1699)은 낭선군의 동생으로 1681년 9월초에 간인(刊印)된〈선원보략〉의 제작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따라서 부석의 낭원군 각석은 〈선원보략〉이 만들어진 1681년 이후 1690년 낭선군이 부석사에 왔을 때를 즈음하여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무량수전 편액은 1358년 왜구의 병화로 무량수전이 소실되면서 재건의 움직임이 있을 즈음 공민왕이 부석사를 방문하여 편액에 사용할 글을 남긴 것으로 보인다. 현판의 정확한 연대는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유추해 볼 때 1361년 이후 1377년 무량수전이 중건될 즈음에 제작되어 걸려 있다가 1691년 오늘날의 모습으로 보수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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