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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사찰 숙수사 '儒佛의 공존 그리고 비극'나의 이야기 2014. 3. 25. 11:10
경북 영주시 순흥에 있는 숙수사지. 아직까지 이 절은 수수께끼에 쌓인 절이다.
儒佛이 공존하지만 불교의 잔해는 한낱 폐허의 잔유물일 뿐 그 가치나 보호는 엉망이다.
보물로 당간지주가 지정되어 있지만 나머지 석조유물들은 그야말로 천떡꾸러기가 되어 제멋대로 방치되어 있다.
숙수사지는 현재 통일신라때 창건된 것으로 출토유물 등을 통해 추측되고 있지만 자세한 내용은 알길이 없다.
경남 산청 지곡사 진관선사비(981년(경종6년))에는 “정종(定宗) 문명대왕(文明大王)이 흥주(興州) 숙수선원(宿水禪院)에 주지(住持)하도록 하였다. 그로부터 선사는 사생(四生)들에게 약석(藥石)을 베풀어 모두에게 치료하기 어려운 침아병(沉痾病)을 낫게 하였으며 육로(六路)에 다리를 놓아 모두 정도(正道)로 돌아가게 하였다”고 하였다.
임경식묘지명(林景軾墓誌銘) (1161년(의종15년)에는 “둘째 유승(惟勝)은 머리를 깎고 중대사(重大師)로 숙수사(宿水寺) 주지로 있다.”
숙수사의 폐사 원인에 대해 고려 고종때 몽고의 침략을 드는 경우도 있지만 안향(1243~1306)이 어린 시절 수학하였고 훗날 아들과 손자인 안목(1360년 卒)도 숙수사에서 공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 1231년 시작된 몽고침략 이후에도 사찰이 존속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숙수사는 언제 폐사가 되었을까.
숙수사는 현재까지의 문헌자료를 토대로 폐사연대를 추정해본 결과 1358년 부석사 무량수전이 적병화(敵兵火:倭寇)로 소실될 당시에 함께 폐사가 된 것으로 보인다. 1543년 주세붕이 소수서원을 세울 당시 이미 숙수사는 폐사가 된 상태였다.
해시계로 알려진 석조 유물.
부석사 무량수전의 계단석 소맷돌과 같은 양식으로 보아 소맷돌.
금방이라도 돌에서 연꽃이 활짝 피어날듯한 연화좌대
석탑 옥계석. 잘 보여주기 위래 뒤집어 놓은 것으로 보이지만 이 또한 유물의 성격을 모르는 무지의 소산.
한 참을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몰라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결론을 얻었다.
바로 디딜방아의 부속.
주인잃은 주초석은 이렇게 재활용되어 그 옛날 숙수사의 영화를 말없이 그려내고 있다.
문성공묘로 들어가는 계단의 디딤돌로 사용되고 있는 불상의 좌대. 안상안에 화려한 꽃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이건 따로 발굴하여 별도의 공간에 전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든다.
목탑의 심초석. 둥근 원형 안에 사각형의 찰주공이 보인다. 아마도 여기가 숙수사의 목탑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발굴이라도 해서 그 규모나 의의를 되찾는 것이 옳지 않은가.
아무리 지금 서원이고 대단히 역사적인 곳이라고는 하지만 여기는 엄연히 숙수사라는 절이 있었던 곳이다. 소수서원만 문화재가 아니라 그 땅에 있는 숙수사의 모든 흔적들도 문화재라는 생각은 안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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